장석주

지금 우리에게 '침묵'이 필요하다

오늘날 같이 소음으로 전락한 말의 과잉 시대에 침묵은 희귀한 현상 중 하나다. 거짓말, 허언, 의례에 젖은 말들은 과잉이고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말은 침묵이라는 모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란스러운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침묵은 영혼으로의 침잠과 내면 성장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지만 요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외면의 성장에 치중한다. 그런 까닭에 침묵의 의미나 가치는 쉽게 간과되어버리는 것이다. 문명사회란 대체로 소란스러운 법이다.  

 

명사회란 갖가지 말과 소음을 제조한다. 도심의 대로들, 공사현장, 대형마트, 백화점, 학교, 사무실, 병원, 파업현장, 스포츠 경기장, 지하철 승차장....... 어디나 소음은 차고 넘친다. 사람은 소음 속에서 태어나 소음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소음은 청각을 집요하게 위협한다. 하지만 소음의 위험성은 은폐되기 일쑤다. 소음은 선(腺), 내장, 심장, 혈관 같은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소음에 오래 노출된 사람은 혈액순환, 심장체계, 선 분비에 장애를 겪는다. 초저주파음과 초음파들도 불안, 두통, 이명 등을 유발하며, 소음이 일으키는 피자극성, 공격성, 초조감을 방치하면 정신분열증이나 편집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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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닫힌 지능과 지각을 열고, 감정을 풍부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선험적 영감의 중추를 자극한다. 훌륭한 시인은 잉크를 찍어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침묵으로 시를 쓴다. 모든 시는 침묵이라는 목표를 지향한다. 좋은 시집에는 말과 말 사이, 혹은 말 너머로 침묵과 고요의 공간이 광막하게 펼쳐진다. 특히 하이쿠와 같은 시는 말의 경제적 운용, 말의 내핍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는다. 하이쿠는 장황한 말의 왕래를 정지시키고 퇴출시킨 뒤 육탈한 뼈와 같은 17자만을 남긴다. 하이쿠의 뜻은 17자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뒤의 여백, 혹은 침묵에서 찾을 수 있다. 하이쿠는 선(禪)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선은 언어의 갑작스럽고 강한 공황 상태 같은 정지, 우리들의 내면에서 코드 지배력을 무력화시키는 여백,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저 내적 암송의 단절”(롤랑 바르트, 『기호의 제국』)이 되는 것이다. 자, 오늘은 좋은 시집 한 권을 천천히 읽으며 침묵이라는 자양분을 충분히 섭취해보자.

 

장석주 스토아, "탐라의 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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