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

이해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청소년에게도 어른에게도 낯선 청소년기

 

반 년 전, 한 중학교에서 뇌과학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 짜리들이 벌써부터 ‘내 인생은 틀렸다’ 며 수업시간에 엎어져 잔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있는 중학생들이 강연하기 제일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제법 준비를 했다. 주변 교사 분들께도 뭐가 제일 마음이 쓰이는지 물어보고, 나도 스스로 고민해 보았다.

 

그러면 뭐하나. 준비하고 예상했던 모든 것은 아이들을 보는 순간 모조리 엎어졌다. 중학교 1학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렸다. 낯설고, 귀엽고, 빛나고, 애틋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생각도 많고 일기도 자주 썼던 나는 나의 청소년기를 제법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아이는 나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까? 어떻게 말을 걸지? 이야기가 잘 통할까?

 

그 아이는 자기가 20 여년 뒤에 이렇게 된다는 걸 알면 좋아할까, 싫어할까? 중학생이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에 민망할만큼 다르게 느껴졌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사람일까?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헤아리다

 

뇌과학이 ‘청소년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이렇게 하는 게 좋다’는 왕도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인생에서 각기 다른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이해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여기에서는 이 말을, 저기에서는 저 말을 할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중심을 잡게 해주며, 이해한 대상을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자신 또는 상대를 이해하고 나면, 이해하기 전보다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며 길을 찾아갈 수 있다.

 

그래서 <청소년과 성인을 이해하는 심리학/뇌과학 >에서는 청소년의 심리/행동 특성과 그 이면의 뇌과학을 살펴봄으로써 청소년기를 이해하는 여정을 함께 하려고 한다. 이 여정을 통해, “중 2병”, “질풍노도의 시기” 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으로 청소년기를 규정하는 것을 넘어, 청소년기를 더 깊이 살펴보고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나의 지나간(혹은 진행 중인) 청소년기와 다른 청소년들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송민령 스토아,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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