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제주를 꿈꾸는 시인의 여행이란,

 

여행할 때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해봐야죠.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어요. 예기치 않은 여행의 즐거움이 바로 그거예요. 예기치 않은 것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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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인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생각이 난 건데, 제가 지난 8월에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함덕 해수욕장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거기에 수많은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든 생각이 저런 관계들을 하나하나 가지다 보면 여행 자체가 어떤 유희나 노동으로 변질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나에게 여행 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어요.

 

장     그건 여행이 아니에요. 그건 관광이죠. 관광과 여행은 달라요.

관광은 스쳐 지나가면서 사물과 풍광을 그냥 보는 자이고,

여행은 몸을 밀고 들어가서 그 몸과 풍경을 혼합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것들을, 새로운 상상력을 발현시키는 게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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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인으로서 본인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 일까요?

 

장     일상이라는 것은 굉장히 낯익은 세계거든요. 사물이라든지, 공간이라든지. 그런 것 속에 빠지면 감각들이 권태를 느끼고 무감각해져요. 그런데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우리 뇌가 긴장하거든요. 새로운 인지에 반응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항상 의도적으로 1년에 좀 긴 여행을 해요.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올해는 베를린을 생각하고 있는데, 베를린 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거죠. 저는 여기저기 사진 찍고 그러지 않아요. 그냥 거기 살면서 걷고, 현지에서 먹고 자고 또 돌아보고, 나라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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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짧게 가더라도 어떻게 가는 여행이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장     짧게 가더라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곳을 가야죠. 너무 유명한 관광지는 피하는 게 좋고, 덜 알려진 곳, 그리고 자기만의 어떤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그런 곳, 영혼의 장소가 될 만한 곳을 찾아서 가는 거죠. 가이드북이나 이런걸 갖지 않고. 계획을 너무 세밀하게 짜지 않고 가야 해요. 여행할 때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해봐야죠.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어요. 예기치 않은 여행의 즐거움이 바로 그거예요. 예기치 않은 것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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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2     너무 좋네요. 최근에 혼자서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어요. 저는 원래 길을 잃고 새로운 것을 만나고 이런 것들에 대해 높은 가치를 두고 있었는데, 너무 외롭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고민이 많았는데, 시인님 말씀을 들으니 좀 해결이 되네요.

 

장     외롭고 힘들고, 두려움 같은 것. 낯선 곳에 길을 잃어버릴 때. 근데, 사실은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금방 파악할 수가 있거든요. 프라하 갔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데 저는 처음 갔으니까 낯설었지만, 며칠 지나 보니까 다 파악하게 되더라고요. 또 2년 전에는 헬싱키를 갔는데, 헬싱키도 그렇고 전 항상 걸어 다녀요, 꽤 긴 거리를. 하루에 2만 보, 3만 보 이렇게 걸어 다녀요. 일부러 먼 길을 걸어 다니면서, 파악 하는거죠.



 

김     저는 종종 ‘쓰지 않는 DNA를 발동시킨다’라는 말을 쓰거든요. 여러모로 일맥상통 하는 거 같네요.

 

장     쓰지 않는 뇌는 일을 하지 않거든요. 게을러지고. 그런데 낯선 곳에 가면 뇌가 생존본능 때문에 곤두서는 거예요. 시각, 청각, 후각 이런 것들이 예민해지는 거죠. 그렇게 되면 사물을 받아들이는 깊이가 달라 지는 겁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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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인님과 제주는 깊은 인연이 있으시잖아요. 그런데 왜 하필 제주인가요? 제주를 사랑하는 남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장     제주는 이국적이잖아요. 내륙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연생태계가 있고, 오름들과 사려니 숲이라든지. 그리고 바다가 둘러싸고 있잖아요. 이 모든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숲과 바다와 오름이 보여 주는 풍광들. 그래서 인생 후반기는 제주도에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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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네. 훗날 삶의 공간을 제주로 이전하고 싶다고, 제주도에서의 삶을 오랫동안 꿈꿔왔다고 하셨죠?

 

장     제주도라는 곳이 섬이니까 약간 차단되는 것이 있잖아요. 사람들 로부터. 아무나 찾아오지 않을 분더러, 또 불러내기도 쉽지 않으니까. 더 나이 들어서는 ‘이렇게 좀 은둔자처럼 그런 곳에 숨어서 명상과 어 떤 고요 속에서 사유·사색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조용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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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럼, 그곳에선 생산적 활동보다는 진정 시인님을 위한 삶을 사시겠네요.

 

장     그렇죠. 그때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거예요. 지금은 역동적 으로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사실, 책을 집필하는 것은 노동 이거든요. 저는 늘 문장노동이라고 하죠. 하지만 그때는 그런 문장노동도 줄이고, 책을 내더라도 굉장히 정제된 책을 내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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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 말을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의 열정적인 삶을 제주에서는 조금 더 내려놓는다는 뜻인가요?

 

장     네. 조금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어떠한 느림과 비움의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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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제주와 관련해 세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잖아요. 그 책들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장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침묵과 고독. 그리고 말이 태어나는 찰나에 대한 이야기. 말과 침묵의 관계. 그다음에 그늘. 그늘은, 세계를 사람들은 항상 빛과 어둠, 혹은 선과 악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 중간에 그늘이라는게 있거든요. 그늘의 미학. 내가 좋아하는 햇빛, 침묵,

그늘.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뭔가 삶에 대한 어떤 철학적인 얘기들을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글들이 다 아름다워요. 정말 산문 미학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책들이에요.

 

 

장석주 시인의 인터뷰 中